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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피치를 처음 따라갔을 때 선배가 확보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확보기를 하네스에서 빼서 앵커에 직접 거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확보기는 무조건 빌레이 루프에 거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확보기 뒷면에 작은 구멍이 왜 하나 더 뚫려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 구멍이 가이드 모드를 위한 것이었고, 멀티피치에서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을 확보할 때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ATC 가이드나 리버소 같은 확보기의 가이드 모드가 무엇인지, 어떻게 세팅하는지,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하중 해제 방법까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드립니다. 가이드 모드, 특히 하중이 걸린 상태에서 로프를 풀어주는 동작은 글로 이해하는 것과 손으로 하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반드시 강사나 숙련자에게 직접 배우고 지상에서 충분히 연습한 뒤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가이드 모드란 무엇인가?
가이드 모드는 확보기를 확보자의 하네스가 아니라 앵커에 직접 연결해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앵커란 볼트나 자연 확보물을 연결해 만든 고정 지점을 말합니다. 튜브형 확보기 중 뒷면에 작은 고리가 하나 더 달린 제품, 즉 블랙다이아몬드 ATC 가이드나 페츨 리버소 같은 모델에서만 가능합니다. 일반 ATC나 ATC-XP에는 이 고리가 없어서 가이드 모드를 쓸 수 없습니다.
가이드 모드의 핵심은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 흔히 세컨이라고 부르는 등반자가 추락하거나 매달렸을 때 확보기가 스스로 로프를 물어준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세컨이란 멀티피치에서 선등자가 먼저 올라가 확보 지점을 만든 뒤 로프를 타고 뒤따라 올라오는 등반자를 말합니다. 확보자가 제동손을 놓치더라도 로프가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오토블록 모드라고도 부릅니다.
다만 이름에 속으면 안 됩니다. 자동으로 잠긴다고 해서 제동손을 완전히 놓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로프가 얼거나 진흙이 묻은 상태에서는 잠금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경우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제동손은 항상 로프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네스 확보와 가이드 모드의 차이는?
하네스에 확보기를 걸고 세컨을 확보하면 세컨의 하중이 확보자 몸으로 그대로 전달됩니다. 세컨이 추락하면 확보자가 앵커 쪽으로 당겨지고, 세컨이 오래 매달려 있으면 확보자가 그 무게를 계속 버텨야 합니다. 두 명 이상을 동시에 확보하는 상황에서는 이 부담이 더 커집니다.
가이드 모드에서는 하중이 앵커로 직접 갑니다. 확보자는 로프를 당겨 여유분을 없애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세컨 두 명이 각각 다른 로프로 올라와도 슬롯 두 개에 하나씩 넣어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긴 멀티피치에서 확보자의 체력을 아끼는 데 큰 차이가 납니다.
대신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합니다. 세컨에게 로프를 내려주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세컨이 매달린 채로 로프를 풀어달라고 하면 하네스 확보에서는 제동손만 살짝 풀면 되지만, 가이드 모드에서는 별도의 해제 동작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가이드 모드 세팅 순서
세팅 자체는 세 단계입니다.
첫째, 확보기 뒷면의 작은 고리에 잠금 카라비너를 끼우고 앵커의 마스터 포인트에 겁니다. 여기서 마스터 포인트란 앵커에서 하중이 모이는 중심 연결 지점을 말합니다. 확보기가 앵커 아래로 늘어지면서 로프가 확보기를 위에서 아래로 통과하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세컨 쪽 로프를 고리 모양으로 접어 슬롯에 밀어 넣습니다. 이때 세컨에게 가는 로프가 위쪽, 제동손이 잡는 로프가 아래쪽에 오도록 합니다. 방향이 반대가 되면 잠금이 걸리지 않습니다. 확보기 몸체에 그려진 등반자 그림과 손 그림을 보고 맞추면 됩니다.
셋째, 두 번째 잠금 카라비너를 슬롯을 통과한 로프 고리와 확보기 몸체의 큰 고리에 동시에 걸고 잠급니다. 이 카라비너가 로프를 눌러 잠금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세팅이 끝나면 반드시 세컨 쪽 로프를 세게 당겨서 잠기는지 확인합니다. 로프가 빠져나오면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카라비너는 두 개 모두 잠금형이어야 합니다. 앵커에 거는 것은 작은 고리에 맞는 크기면 되고, 로프를 누르는 것은 로프와 몸체를 동시에 잡아야 하므로 둥근 단면의 HMS형이 부드럽게 작동합니다.
로프 당기는 요령
가이드 모드에서 로프를 당길 때는 제동손 쪽 로프를 확보기 아래로 곧게 당깁니다. 세컨이 빠르게 올라오면 로프가 잘 딸려 오지 않고 확보기가 뻑뻑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확보기를 살짝 위로 들어 올리거나 로프를 누르는 카라비너 위치를 손으로 잡아주면 부드러워집니다.
당긴 로프는 발밑에 그대로 두지 말고 슬링이나 로프 고리에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좁은 확보 지점에서 로프가 엉키면 다음 피치 출발이 늦어집니다. 로프 정리도 확보의 일부라는 말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중이 걸린 상태에서 로프 풀어주기
가이드 모드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한 동작입니다. 세컨이 추락해서 매달려 있거나 루트를 벗어나 옆으로 이동해야 할 때 로프를 조금 내려줘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런데 잠금이 걸린 상태에서는 로프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해제 원리는 확보기 몸체를 위로 들어 올려 로프를 누르는 카라비너의 각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확보기 뒤쪽에 있는 작은 해제 구멍에 카라비너나 슬링을 걸고 위로 당기면 잠금이 풀리면서 로프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한 번 풀리기 시작하면 세컨의 체중이 그대로 로프에 실려 순식간에 흘러 내려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 동작 중에 세컨이 급강하한 사고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그래서 해제 전에 반드시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첫째, 제동손 쪽 로프에 뮌터 히치나 프루지크 같은 별도 제동 장치를 만들어 앵커의 다른 카라비너에 연결합니다. 확보기가 풀려도 로프가 이 백업에서 멈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해제 구멍에 건 슬링을 손으로 당기지 말고 앵커 위쪽에 있는 카라비너에 걸어 방향을 바꾼 뒤 천천히 당깁니다. 이렇게 하면 힘 조절이 훨씬 쉬워지고, 급하게 풀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절차는 글로 읽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이 세 개는 필요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처음에는 지상에서 나무에 앵커를 만들고 파트너를 매단 채로 여러 번 연습한 뒤에야 감을 잡았습니다. 멀티피치 현장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은 절대 권하지 않습니다.
가이드 모드를 쓰면 안 되는 상황
가이드 모드는 세컨 확보 전용입니다. 선등자를 확보할 때는 절대 쓰면 안 됩니다. 선등자가 추락하면 로프가 위에서 당겨지는데, 가이드 모드는 아래로 당겨지는 하중에만 잠기도록 설계되어 있어 제동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하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이드 모드 상태에서 로프를 내려주는 방식으로 세컨을 하강시키려 하면 위에서 설명한 해제 동작을 계속 반복해야 하고, 그만큼 위험이 커집니다. 세컨을 하강시켜야 한다면 확보기를 하네스로 옮기거나 뮌터 히치로 바꾸는 것이 안전합니다.
앵커가 확보기보다 아래에 있거나 확보기가 바위 모서리에 눌려 로프가 곧게 빠지지 않는 위치에서도 잠금이 불안정해집니다. 확보기가 공중에 자유롭게 매달려 있는지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일반 ATC나 ATC-XP로도 가이드 모드를 쓸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가이드 모드는 확보기 뒷면에 앵커 연결용 작은 고리가 있는 모델에서만 됩니다. 블랙다이아몬드 ATC 가이드, 페츨 리버소, 그 외 '가이드' 또는 '오토블록' 기능을 표기한 튜브형 확보기인지 제품 설명을 먼저 확인하세요.
자동으로 잠기니까 제동손을 놓아도 되나요?
안 됩니다. 로프가 얼거나 진흙이 묻은 경우, 로프 직경이 확보기 권장 범위를 벗어난 경우, 확보기가 바위에 눌려 각도가 틀어진 경우에는 잠금이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이드 모드는 확보자의 실수를 보완하는 보조 장치이지 제동손을 대신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카라비너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나요?
잠금 카라비너 두 개가 필요합니다. 앵커 연결용은 확보기 뒷면 고리를 통과하는 크기면 되고, 로프를 누르는 쪽은 로프와 확보기 몸체를 함께 잡아야 하므로 단면이 둥근 HMS형 잠금 카라비너가 걸림 없이 작동합니다. 비잠금 카라비너를 쓰면 로프 움직임에 게이트가 열릴 수 있습니다.
세컨 두 명을 동시에 확보할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각 세컨의 로프를 슬롯 하나씩에 따로 넣어야 하고, 두 로프 모두 방향이 맞는지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한 명이 매달려 하중이 걸리면 그쪽 로프가 잠기면서 옆 슬롯의 로프도 뻑뻑해져 다른 세컨에게 로프를 당겨주기 어려워집니다. 두 명이 서로 다른 속도로 올라올 때 이 문제가 자주 생기므로 미리 무전이나 신호를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가이드 모드로 선등자를 확보해도 되나요?
절대 안 됩니다. 가이드 모드는 확보기 아래쪽으로 당겨지는 하중에만 잠기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선등자가 추락하면 로프가 위쪽으로 당겨지므로 잠금이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선등자 확보는 반드시 하네스 빌레이 루프에 확보기를 걸고 일반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하중 해제 연습은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나요?
지상에서 튼튼한 나무나 인공 앵커에 확보기를 걸고, 파트너가 하네스를 착용한 채 바닥에서 발이 살짝 뜨는 정도로만 매달린 상태에서 연습하세요. 백업 뮌터 히치를 먼저 만들고, 해제 슬링을 위쪽 카라비너로 방향 전환한 뒤 천천히 당기는 순서를 몸에 익힐 때까지 반복합니다. 이 과정은 강사나 숙련자와 함께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마무리
가이드 모드는 멀티피치 확보자의 체력을 아끼고 세컨 두 명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기능입니다. 세팅은 세 단계로 어렵지 않지만, 하중이 걸린 상태에서 로프를 풀어주는 동작은 별도의 백업 없이 시도하면 세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세팅보다 해제를 먼저 연습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확보기를 오래 쓰기 위한 세척과 보관 방법을 정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