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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습 첫날 강사가 시범을 보이는데 뭔가 계속 어긋났습니다. 강사는 오른손으로 로프를 아래로 당기는데 저는 자꾸 왼손이 먼저 나갔습니다. 강사 말대로 오른손을 제동손으로 두려니 손이 어색해서 로프를 제대로 못 잡았고, 왼손으로 바꾸니 이번에는 카라비너 게이트가 손등에 자꾸 걸렸습니다. 왼손잡이라서 그렇다는 걸 알아채기까지 한참 걸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왼손이 제동손인 사람이 확보기와 카라비너를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 강습이나 암장 테스트에서 겪는 혼선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제동손은 어느 손이어야 하나
먼저 원칙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제동손은 힘이 더 세고 반사가 빠른 손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제동손이란 확보기 아래쪽 로프를 잡고 추락을 막는 손을 말합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 왼손잡이는 왼손이 자연스럽습니다.
대부분의 교재와 강습이 오른손 기준으로 되어 있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이지, 오른손이 제동손이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확보기 제조사 설명서도 왼손 제동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팅을 거울처럼 뒤집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이것을 모르고 오른손 세팅 그대로 왼손으로 잡으면 앞서 제가 겪은 것처럼 계속 뭔가 걸립니다.

튜브형 확보기 세팅
ATC나 리버소 같은 튜브형 확보기는 좌우가 대칭입니다. 슬롯이 두 개 나란히 있고 어느 쪽에 로프를 넣어도 작동은 같습니다. 그래서 확보기 자체는 왼손잡이라고 특별히 바꿀 것이 없습니다.
바뀌는 것은 로프를 넣는 위치입니다. 제동손이 왼손이면 제동 로프가 왼쪽 아래로 빠지도록 세팅하는 것이 편합니다. 오른손 기준 설명대로 오른쪽 슬롯에 넣으면 제동 로프가 몸 오른쪽으로 빠지고, 이것을 왼손으로 잡으려면 팔이 몸 앞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이 자세는 추락을 잡을 때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습니다.
로프를 넣은 뒤 왼손으로 제동 로프를 잡고 아래로 당겼을 때 팔이 몸 왼쪽 옆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면 맞게 세팅된 것입니다.
카라비너 게이트 방향
왼손잡이가 가장 많이 걸리는 부분이 여기입니다. 확보용 잠금 카라비너는 게이트가 제동손 반대쪽을 향하도록 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게이트란 카라비너가 열리는 쪽 문을 말합니다. 제동손 쪽에 게이트가 있으면 로프를 당기는 손등이나 로프 자체가 게이트를 밀어 여는 일이 생깁니다.
오른손 제동 기준으로는 게이트가 왼쪽, 즉 몸 쪽을 향하게 걸라고 배웁니다. 왼손잡이는 이것을 그대로 뒤집어 게이트가 오른쪽을 향하게 걸어야 합니다. 강습 첫날 제 손등에 게이트가 계속 걸렸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른손 기준으로 건 카라비너를 왼손으로 잡고 있었으니 게이트가 정확히 제동손 쪽에 있었던 것입니다.
잠금 슬리브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리브가 제동손 쪽에 있으면 로프가 지나가면서 슬리브를 돌려 풀어버릴 수 있습니다. 게이트와 슬리브가 모두 오른쪽, 제동손 반대편에 오도록 걸면 됩니다.
그리그리 세팅
그리그리는 좌우가 대칭이 아닙니다. 몸체 한쪽에 하강 레버가 붙어 있고, 로프는 정해진 방향으로만 넣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왼손잡이가 못 쓰는 것은 아닙니다. 로프 넣는 방향은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도 같습니다. 몸체에 그려진 등반자 그림과 손 그림대로 넣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손의 역할입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으로 제동 로프를 잡고 왼손으로 레버를 당깁니다. 왼손잡이는 왼손으로 제동 로프를 잡고 오른손으로 레버를 당깁니다. 그리그리를 하네스에 걸었을 때 레버가 오른손 쪽에 오는 것이 일반적인 방향이라, 왼손잡이에게는 오히려 레버 조작이 편한 면도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하강시킬 때입니다. 오른손잡이 기준 설명에서는 왼손 레버, 오른손 제동으로 되어 있어서, 이것을 그대로 따라 하면 왼손잡이는 약한 손으로 제동을 하게 됩니다. 반드시 왼손이 제동 로프를 잡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레버를 천천히 당기는 순서로 연습해야 합니다.
왼손잡이 세팅 확인 순서
저는 지금도 확보기를 걸고 나면 같은 순서로 확인합니다. 오른손 기준 파트너 체크와 순서가 조금 달라서 따로 정리해둡니다.
첫째, 왼손으로 제동 로프를 잡고 아래로 당겨봅니다. 팔이 몸 앞을 가로지르지 않고 왼쪽 옆으로 내려가면 로프 위치가 맞는 것입니다. 둘째, 카라비너 게이트와 잠금 슬리브가 오른쪽을 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슬리브를 손으로 한 번 더 돌려 잠겨 있는지 봅니다. 셋째, 등반자 쪽 로프와 제동 로프가 서로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튜브형은 좌우 대칭이라 이 부분에서 실수가 잦았습니다. 넷째, 그리그리라면 오른손을 레버에 올려보고, 왼손이 제동 로프를 잡은 채로 레버가 자연스럽게 당겨지는지 봅니다.
이 네 가지를 하는 데 10초도 안 걸립니다. 처음 몇 달은 순서를 소리 내어 말하면서 했는데, 그렇게 하면 파트너도 제 세팅이 왼손 기준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서 확인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가 줄었습니다.
강습과 암장 테스트에서 겪는 혼선
왼손잡이가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는 세팅보다 사람입니다.
강사가 오른손 기준으로 시범을 보이면 왼손잡이는 거울처럼 뒤집어서 봐야 하는데,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강습 전에 "왼손잡이라 제동손을 왼손으로 하고 싶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강사는 마주 보고 시범을 보이거나 왼손 세팅을 따로 설명해줍니다.
암장 빌레이 테스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암장은 오른손 제동을 전제로 확인하는 경우가 있어서, 왼손으로 제동하면 "손이 반대"라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이때는 왼손잡이라고 밝히고, 제동손이 로프를 놓지 않는 것과 카라비너 게이트가 제동손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원칙을 지키고 있다면 어느 손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파트너와 확인할 때도 한 마디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파트너가 오른손 기준으로 제 세팅을 보면 카라비너 방향이 "반대"로 보여서 잘못됐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서로 확인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지만, 왼손잡이 세팅을 모르는 파트너가 카라비너를 "바로잡아" 주면 오히려 위험해집니다.
양손 모두 익혀두면 좋은 이유
왼손 제동으로 정착했더라도 오른손 제동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멀티피치에서 확보 지점 위치에 따라 제동손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고, 파트너가 세팅해둔 오른손 기준 장비를 급하게 받아서 쓰는 상황도 생깁니다. 주 제동손은 왼손으로 두되, 오른손으로도 추락을 잡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연습해두는 것을 권합니다. 이건 오른손잡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왼손잡이용 확보기가 따로 있나요?
따로 없습니다. 튜브형은 좌우 대칭이라 로프 넣는 위치만 바꾸면 되고, 그리그리 같은 보조 제동 확보기는 로프 방향이 정해져 있지만 손의 역할만 바꾸면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왼손잡이 전용 제품을 찾느라 시간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제동손을 왼손으로 하면 강습에서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강사가 오른손 기준으로 시범을 보이므로, 강습 시작 전에 왼손잡이라고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제 경험상 미리 말하면 마주 보고 시범을 보이거나 왼손 세팅을 따로 설명해줍니다.
카라비너 게이트는 정확히 어느 쪽을 향해야 하나요?
제동손 반대쪽입니다. 왼손이 제동손이면 게이트와 잠금 슬리브가 오른쪽을 향하게 겁니다. 오른손 기준 설명의 "게이트가 몸 쪽(왼쪽)"을 그대로 따라 하면 게이트가 제동손 쪽에 오게 되어 손등이나 로프에 걸립니다.
그리그리 로프 방향도 뒤집어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리그리는 로프 넣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이 방향은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도 같습니다. 몸체에 그려진 등반자 그림과 손 그림대로 넣으면 됩니다. 바뀌는 것은 왼손이 제동 로프를 잡고 오른손이 레버를 당긴다는 역할 배분뿐입니다.
암장 빌레이 테스트에서 왼손 제동으로 떨어질 수도 있나요?
제동손이 로프를 놓지 않고, 카라비너 게이트가 제동손 반대편에 있고, 추락을 확실히 잡는다면 어느 손이든 통과합니다. 테스트 전에 왼손잡이라고 밝히면 확인하는 분도 왼손 기준으로 봐줍니다. 밝히지 않으면 "손이 반대"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으니 먼저 말하는 것이 편합니다.
파트너가 제 카라비너 방향을 고쳐주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일단 손대지 말라고 한 뒤, 왼손 제동이라 게이트가 오른쪽을 향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하면 됩니다. 파트너 체크는 좋은 습관이지만 왼손 세팅을 모르는 사람이 오른손 기준으로 "바로잡아" 주면 게이트가 제동손 쪽으로 오게 되어 오히려 위험해집니다.
오른손 제동도 꼭 연습해야 하나요?
주 제동손은 왼손으로 두더라도, 오른손으로도 추락을 잡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연습해두는 것을 권합니다. 멀티피치에서 확보 지점 위치 때문에 제동손을 바꿔야 하거나, 파트너의 오른손 기준 장비를 급하게 받아 쓰는 상황이 실제로 생깁니다.
마무리
왼손잡이 빌레이는 제동손을 왼손으로 두고, 튜브형 확보기의 로프 위치와 카라비너 게이트 방향을 오른손 기준에서 거울처럼 뒤집으면 됩니다. 그리그리는 로프 방향은 같고 레버와 제동손의 역할만 바뀝니다. 세팅보다 어려운 것은 강습과 테스트에서 오른손 기준으로 보는 사람들과의 혼선인데, 미리 왼손잡이라고 밝히는 것만으로 대부분 해결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실내 암장 빌레이 테스트에서 무엇을 보는지, 왜 떨어지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