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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가 오버행 구간에서 연달아 세 번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리버소로 확보하고 있었는데 세 번째 추락을 잡고 나니 제동손 손바닥이 화끈거렸고, 집에 와서 보니 로프가 지나간 자리에 붉은 줄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하네스를 잡는데도 손바닥이 쓰라렸습니다. 그때까지 빌레이 장갑은 겨울에나 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빌레이 장갑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보기 종류에 따라 장갑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고를 때 무엇을 봐야 하는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빌레이 장갑이 하는 일
빌레이 장갑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손을 보호합니다. 확보 중 제동손은 로프가 흐를 때마다 마찰을 받습니다. 추락을 잡거나 하강시킬 때 로프가 손바닥을 빠르게 지나가면 마찰열로 화상을 입기도 합니다. 여기서 화상이란 실제로 로프가 손바닥 피부를 태우는 것으로, 심하면 물집이 잡힙니다.
둘째, 제동손이 로프를 놓치지 않게 돕습니다. 손바닥에 땀이 나거나 로프가 젖었을 때 맨손은 미끄러집니다. 장갑의 가죽면은 이런 상황에서도 마찰을 유지해줍니다.

셋째, 확보자가 겁내지 않고 손을 쓰게 해줍니다. 손이 아플 것을 알면 무의식적으로 제동손 힘을 덜 주게 됩니다. 장갑을 끼면 로프를 꽉 쥐는 데 망설임이 없어집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확보기 종류별 장갑 필요성
장갑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어떤 확보기를 쓰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튜브형 확보기, 즉 ATC나 리버소 계열은 장갑의 필요성이 가장 큽니다. 제동력 전부를 제동손 마찰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추락을 잡을 때 로프가 손바닥에서 미끄러지는 거리만큼 등반자가 더 떨어지고, 그 미끄러짐이 그대로 손바닥 마찰열이 됩니다. 무거운 파트너를 잡거나 하강시킬 때, 특히 자연 암장에서 긴 하강을 시킬 때는 장갑이 없으면 손이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리그리 같은 보조 제동 확보기는 장갑 없이도 무난한 편입니다. 캠이 로프를 물어주기 때문에 제동손에 걸리는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다만 하강시킬 때는 다릅니다. 레버를 당겨 하강시키는 동안 제동손으로 로프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이때 로프가 손바닥을 계속 지나갑니다. 무거운 파트너를 긴 거리 하강시키면 그리그리도 손이 뜨거워집니다.
멀티피치나 뮌터 히치처럼 로프가 손을 많이 지나가는 상황에서는 확보기 종류와 관계없이 장갑을 끼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서 뮌터 히치란 확보기 없이 카라비너에 로프를 감아 제동하는 방법으로, 로프 마찰이 손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상황 | 장갑 필요성 | 이유 |
| 튜브형(ATC·리버소) 확보 | 높음 | 제동력 전부를 제동손 마찰에 의존 |
| 그리그리 실내 짧은 루트 | 낮음 | 캠이 로프를 물어 제동손 부담 적음 |
| 그리그리 긴 하강 | 중간 | 하강 중 로프가 제동손을 계속 지나감 |
| 멀티피치·뮌터 히치 | 높음 | 로프 마찰이 손에 그대로 전달 |
| 자연 암장 하강 | 높음 | 로프에 묻은 모래가 손바닥을 갈아냄 |
장갑을 끼면 손해 보는 것
장갑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단점도 알고 써야 합니다.
첫째, 로프 감각이 둔해집니다. 맨손일 때는 로프의 미세한 당김이나 등반자 움직임이 손으로 느껴지는데, 장갑을 끼면 이 감각이 무뎌집니다. 초보 확보자가 처음부터 장갑을 끼면 로프 감각을 익히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둘째, 로프를 주고받는 동작이 느려집니다. 리드 확보에서 등반자가 퀵드로에 로프를 걸 때 빠르게 로프를 내줘야 하는데, 두꺼운 장갑은 이 동작을 방해합니다. 여름에는 손에 땀이 차서 더 불편합니다.
셋째, 그리그리에서는 조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장갑을 끼고 확보기 몸체를 통째로 움켜쥐면 캠 회전을 막아 잠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맨손보다 손이 커진 만큼 캠을 누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리그리 손 부상과 관련해 이전 글에서 다뤘던 내용과 같은 원리입니다.
넷째, 잘 맞지 않는 장갑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헐거운 장갑은 로프에 딸려 들어가고, 손가락 끝이 남는 장갑은 카라비너 게이트에 걸립니다.
언제 끼고 언제 벗을까?
제 기준은 이렇습니다. 실내 암장에서 그리그리로 짧은 루트를 확보할 때는 맨손으로 합니다. 로프 감각을 유지하고 싶고, 손이 다칠 만한 상황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튜브형 확보기를 쓸 때, 파트너가 나보다 무거울 때, 자연 암장에서 긴 하강을 시켜야 할 때, 로프가 젖었거나 더러울 때, 그리고 멀티피치를 갈 때는 장갑을 낍니다. 특히 자연 암장에서 하강시킬 때는 로프에 묻은 모래가 손바닥을 갈아내기 때문에 장갑 없이는 하지 않습니다.
초보자에게는 처음 몇 달은 맨손으로 로프 감각을 익힌 뒤 필요할 때 장갑을 쓰기를 권합니다. 다만 강습에서 추락 연습을 반복하는 날이라면 처음부터 끼는 것이 맞습니다.
고를 때 볼 것
빌레이 전용 장갑은 손바닥과 손가락 안쪽이 가죽으로 되어 있고 손등은 통기성 있는 원단으로 된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를 때는 다음을 봅니다.
손바닥 가죽이 두껍되 손가락은 굽혀지는지 확인합니다. 손바닥은 두꺼워야 로프 열을 막지만 손가락까지 두꺼우면 로프를 다루기 어렵습니다. 손가락 끝이 잘린 반장갑과 손가락 전체를 덮는 장갑이 있는데, 반장갑은 감각이 살아 있는 대신 손가락 안쪽 보호가 안 됩니다. 하강을 많이 시킨다면 전체를 덮는 쪽이 낫습니다.
손목 부분에 카라비너를 걸 수 있는 고리가 있는지도 봅니다. 장갑을 벗어서 하네스에 걸어두기 편하고, 잃어버리는 일이 줄어듭니다. 사이즈는 손에 딱 맞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헐겁다면 한 치수 작은 것을 고르는 것이 맞습니다. 가죽은 쓰면서 늘어납니다.
작업용 가죽 장갑으로 대신하는 분도 있는데, 손바닥이 두껍고 손가락이 뻣뻣해서 로프 다루기가 불편합니다. 급할 때 임시로는 되지만 계속 쓸 것이라면 빌레이 전용 장갑이 낫습니다.
장갑 관리와 교체 시기
가죽 장갑은 로프가 지나가는 자리부터 닳습니다. 제 장갑은 검지와 손바닥 아래쪽, 그러니까 제동손으로 로프를 꺾어 잡는 자리가 먼저 얇아졌습니다. 그 자리가 반들반들해지고 안쪽 천이 비치기 시작하면 교체할 때입니다. 얇아진 가죽은 마찰열을 막지 못해 장갑을 끼고도 손바닥이 뜨거워집니다.
젖은 장갑은 그늘에서 말립니다. 햇볕이나 난방기 앞에서 말리면 가죽이 굳어 손가락이 안 굽혀집니다. 땀에 젖은 채로 가방에 넣어두면 냄새가 배고 가죽이 삭기 때문에, 암장에서 돌아오면 하네스에서 떼어 펼쳐두는 습관을 들이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실내 암장에서도 빌레이 장갑을 껴야 하나요?
그리그리로 짧은 루트를 확보한다면 맨손이 로프 감각에 더 낫습니다. 다만 튜브형 확보기를 쓰거나 파트너가 나보다 많이 무겁다면 실내에서도 끼는 것이 손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반장갑과 손가락 전체를 덮는 장갑 중 어느 것이 나은가요?
로프를 주고받는 동작이 많은 리드 확보에는 반장갑이 편하고, 하강을 많이 시키거나 멀티피치를 간다면 손가락 안쪽까지 보호되는 전체형이 낫습니다. 하나만 산다면 전체형을 권합니다.
그리그리에 장갑을 끼면 위험하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장갑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장갑을 끼면 손이 커져서 확보기 몸체를 통째로 움켜쥐기 쉬워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몸체를 쥐면 캠이 회전하지 못해 잠기지 않습니다. 제동손을 항상 로프에 두는 기본만 지키면 장갑을 껴도 괜찮습니다.
작업용 가죽 장갑으로 대신해도 되나요?
급할 때 하루 정도는 됩니다. 다만 손가락이 뻣뻣해 로프를 내주는 동작이 느려지고, 손목 고리가 없어 벗었을 때 둘 곳이 없습니다. 계속 쓸 것이라면 빌레이 전용 장갑을 권합니다.
사이즈는 어떻게 고르나요?
손에 딱 맞게 고릅니다. 가죽은 쓰면서 늘어나기 때문에 조금 끼는 느낌이 정상입니다. 손가락 끝이 남으면 카라비너 게이트에 걸리고, 헐거우면 로프에 딸려 들어가므로 두 사이즈 사이에서 고민된다면 작은 쪽을 고릅니다.
초보자는 처음부터 장갑을 끼는 것이 좋나요?
처음 몇 달은 맨손으로 로프 감각을 익히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강습에서 추락 연습을 반복하는 날처럼 손이 다칠 것이 뻔한 날에는 처음부터 끼는 것이 맞습니다.
장갑은 언제 교체하나요?
로프가 지나가는 손바닥 자리가 반들반들해지고 안쪽 천이 비치기 시작하면 교체합니다. 얇아진 가죽은 마찰열을 막지 못해 장갑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마무리
빌레이 장갑은 필수 장비는 아니지만, 튜브형 확보기를 쓰거나 무거운 파트너를 잡거나 자연 암장에서 하강을 시킬 때는 손을 지키고 제동을 확실하게 해주는 장비입니다. 반대로 실내에서 그리그리로 짧게 확보할 때는 맨손이 로프 감각에 더 낫습니다. 상황에 따라 끼고 벗는 기준을 하나 정해두면 됩니다. 저는 손바닥에 붉은 줄이 남은 뒤에야 그 기준을 정했는데, 그 전에 정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왼손잡이 확보자가 확보기와 카라비너를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