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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리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하강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레버를 당기면 너무 빠르게 내려가고, 조심한다고 조금만 당기면 아예 안 내려가고, 그 사이 어딘가를 찾는 게 처음엔 쉽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보던 선배가 레버를 쥐는 방법부터 다시 알려줬는데 그때서야 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튜브형만 쓰다가 그리그리로 넘어오면 다들 한 번씩 겪는 과정이더라고요. 오늘은 그리그리로 하강할 때 올바른 방법과 초반에 많이 하는 실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자동확보기 그리그리 하강이 튜브형과 다른 이유
튜브형 확보기로 하강할 때는 제동 손으로 로프를 잡는 힘이 하강 속도를 그대로 결정합니다. 손을 조이면 느려지고 풀면 빨라지는, 말 그대로 직관적인 구조입니다.
그리그리는 접근 자체가 다릅니다. 여기서 캠이란 로프를 물어서 잠그는 내부 부품을 의미하는데, 그리그리는 이 캠이 기본적으로 로프를 잠그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강 레버를 당겨야 캠이 열리면서 로프가 빠져나갑니다. 손에 힘을 주는 감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조절이 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힘을 주는 것과 레버를 당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동작이라는 걸 처음엔 잘 모르고 시작하게 됩니다.
확보기 하강 전에 매번 확인해야 하는 것들
내려가기 전에 몇 가지는 습관처럼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먼저 로프가 그리그리에 올바른 방향으로 걸려 있는지입니다. 본체에 방향을 알려주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반대로 걸리면 캠이 아예 작동하지 않아 자동잠금 기능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걸 때마다 방향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낫습니다.
카라비너 잠금 상태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하강 중에 잠금이 풀려 있으면 위험한 상황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어서, 내려가기 직전 게이트를 한 번 더 돌려보는 게 기본입니다.
아래쪽 공간을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로에 사람이나 장애물이 있는지 미리 살피고 내려가야 합니다.
확보기 손 위치가 왜 이렇게 중요할까
그리그리 하강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손 위치입니다. 제동 손은 항상 그리그리 아래쪽 로프를 잡고 있어야 하는데, 레버를 당기는 손과 제동 손이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는 걸 처음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보면 왼손이 레버를 감싸 쥐고, 오른손이 아래쪽 로프를 잡습니다. 레버를 천천히 당기면서 오른손으로 속도를 함께 조절하는 방식인데, 레버만 당기고 제동 손을 놓아버리면 자동잠금이 있어도 예상보다 빠르게 내려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동 손은 레버를 조작하는 중에도 로프에서 떼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몸 자세는 벽면과 대략 90도를 유지하는 게 기본입니다. 다리를 벽에 대고 상체를 뒤로 기울인 채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느낌인데, 처음엔 뒤로 기우는 자세 자체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무서움이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봅니다. 로프를 믿고 체중을 싣는 감각은 몸으로 여러 번 겪어봐야 익숙해지는 부분이지, 머리로 이해한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확보기 레버 조작에서 처음에 많이 하는 실수
레버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당기는 게 초보자들이 가장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조심스럽게 시작하려다가 아무것도 안 내려가는 게 답답해서 레버를 확 당기면 순간적으로 빠르게 떨어지고, 그 속도에 놀라서 손을 놓으면 캠이 잠기면서 급정지합니다. 이게 반복되면 벽면에 부딪히거나 하강 자체가 매끄럽지 않게 됩니다.
레버는 조금씩 천천히 당기면서 속도를 올려가는 게 맞는 방법입니다. 처음엔 느리게 내려가도 상관없습니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레버 조작 감각을 먼저 익히는 게 순서입니다.
레버를 너무 세게 쥐는 것도 문제인데, 손가락 전체로 강하게 쥐면 미세 조절이 오히려 어려워집니다.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당기는 느낌으로 다루는 게 속도 조절에는 더 유리합니다.
하강 중 멈추는 법과 자동잠금을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
하강 중 멈추고 싶으면 레버에서 손을 떼면 됩니다. 캠이 자동으로 로프를 물어 멈추는 게 그리그리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홀드를 잡거나 장비를 정리하거나 아래쪽 상황을 확인할 때, 레버만 놓으면 그 자리에 멈춰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내려가려면 레버를 조심스럽게 다시 당기면 되는데, 멈춘 상태에서 급하게 당기면 순간 속도가 확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서 천천히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자동잠금은 안전 보조 장치이지 완전한 자동 안전 장치는 아닙니다. 로프가 젖었거나 직경이 호환 범위를 벗어나면 캠 반응이 느려질 수 있고, 레버를 강하게 당긴 채로 제동 손까지 놓아버리면 자동잠금이 즉각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동 손은 어떤 상황에서도 로프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그리그리를 쓸 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처음 그리그리를 배울 때는 다들 레버와 손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기 마련입니다. 저도 그 과정을 거쳤고, 지금 와서 보면 속도보다 손 위치와 조작 감각을 천천히 익히는 게 결국 가장 빠른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